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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인가살[國人可殺]~국인개왈현[國人皆曰賢]~국일암[國一庵]


국인[國人]  군신(君臣)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민(民)이나 신료(臣僚)와는 구별된다.

국인[國人]  비읍(鄙邑)에 거주하는 야인(野人)과 대비되어 지배계급을 형성하는 國(국)안의 거주인을 지칭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등의 고문헌에 보이는 읍(邑)은 대체로 3단계로 구분되는데, 제후가 거주하는 중심적 邑(읍)인 國(국), 國(국) 이외의 중요 읍인 都(都), 비읍(鄙邑)을 포함한 國(국)과 都(도) 이외의 邑(읍)이 이것이다. 당시의 사회구조를 國(국)과 野(야: 鄙라고도 함)로 대별했을 때, 國(국)은 이중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도(都)는 성곽 밖의 野(야)에 있는 제후의 분읍(分邑)이었다. 國(국)과 野(야) 사이에는 郊(교)라는 지역이 있어 여기에도 邑(읍)이 설치되었다. 國(국)의 최고 구성원은 公(공)으로 통칭되는 국군(國君)이었으며, 그 다음은 國(국)의 주요 관직을 세습독점했던 극소수의 경대부(卿大夫)였다. 국인(國人)의 최말단 지배층은 士(사) 계급과 大夫(대부)의 하층이다. 국인(國人)은 직접 생산을 담당하는 서인(庶人)과 구분되며, 모두가 전쟁에 참가하는 전사(戰士)로서의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국군(國君)의 폐립(廢立)이나 외교 등에 간여하였다.

국인가살[國人可殺]  맹자(孟子) 양혜왕 하(梁惠王下)에 “좌우의 신하들이 모두 죽일 만하다고 말하더라도 듣지 말며, 여러 대부들이 모두 죽일 만하다고 말하더라도 듣지 말며, 나라 사람들이 모두 죽일 만하다고 말한 뒤에 살펴보아서 죽일 만한 점을 발견한 뒤에 죽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라 사람들이 죽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左右皆曰可殺 勿聽 諸大夫皆曰可殺 勿聽 國人皆曰可殺然後 察之 見可殺焉然後 殺之 故曰國人殺之也]”라고 하였다.

국인개왈가살[國人皆曰可殺]  나라 사람이 모두 죽어야 한다고 말하다. 여론을 널리 들어 본 뒤에 정책을 시행해야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맹자(孟子) 양혜양 하(梁惠王下)에 나오는 말이다.

국인개왈현[國人皆曰賢]  맹자(孟子) 양혜왕 하(梁惠王下)에 “좌우의 측근들이 모두 유능하다고 말해도 아직 안 되고, 여러 대부들이 모두 유능하다고 말해도 아직 안 된다. 나라 안의 사람들 모두가 유능하다고 말한 연후에 살펴보고서 유능한 것을 확인한 뒤에 임용해야 한다.[左右皆曰賢 未可也 諸大夫皆曰賢 未可也 國人皆曰賢 然後察之 見賢焉然後用之]”라는 말이 나온다.

국일소의[國一素衣]  경산(徑山)에 주석(住錫)하였던 당(唐)나라의 도흠선사(道欽禪師)를 말한다. 도흠이 당나라 대종(代宗) 때 궁궐에 나아가 황제를 배알하자, 황제가 국일선사(國一禪師)란 호를 내려 주었다. 그 뒤에 경산으로 돌아와서 있다가 덕종(德宗) 때 입적하니 대각선사(大覺禪師)란 시호를 내렸는데, 토끼가 와서 설법을 듣고, 기르는 닭이 산 것을 먹지 않는 등 여러 가지 이적(異蹟)이 있었다. <宋高僧傳 卷9> <傳燈錄 卷4>

국일암[國一庵]  해인사의 부속 암자 중의 하나이다. 1642년에 벽암각성(碧岩覺性) 대사가 이곳에 주석(住錫)한 이래 이곳을 ‘국일암’이라 부르게 되었으니, ‘국일(國一)’은 벽암각성 대사가 인조에게 받은 호이다. 벽암대사는 진묵도인의 제자로, 1624년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 팔도총섭으로서 승군을 독려하여 3년 만에 성을 완공한 공으로 인조에게 보은천교원조국일도대선사(報恩闡敎圓照國一都大禪師)라는 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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