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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민소지[君民素志]~군방[君房]~군방보[群芳譜]~군벽[窘逼]


군민소지[君民素志]  탕(湯)이 사람을 시켜 폐백을 가지고 초빙하자 이윤(伊尹)이 아무런 욕심이 없이 자득(自得)한 모습으로 말하기를 “내 어찌 탕의 폐백을 받으리요. 내 어찌 초야에 묻혀 이대로 요순(堯舜)의 도를 즐기느니만 하리요.” 하였다. 탕이 세 번이나 사람을 보내 초빙하자 이윽고 이윤이 생각을 바꾸어 말하기를 “내가 초야에 묻혀 이대로 요순의 도를 즐기는 것보다 내 차라리 이 임금을 요순과 같은 임금으로 만드는 편이 낫지 않겠으며, 내 차라리 이 백성을 요순의 백성으로 만드는 편이 낫지 않겠으며, 내 자신이 직접 그러한 치세(治世)를 보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하였다. <孟子 萬章上>

군방[君房]  서복(徐福)의 자이다. 서불(徐巿)이라고도 한다. 진(秦)나라 낭야(琅琊) 사람으로 방사(方士)로서 진시황(秦始皇)에게 글을 올려 동해(東海) 안에 삼신산이 있다고 하고, 진 시황의 명을 받아 선남선녀들을 데리고 불사약을 구하러 갔다고 한다.

군방[君房]  장군방(張君房)을 말한다. 송(宋)나라 안륙(安陸) 출신으로, 집현전 교리 등의 벼슬을 지냈다. 황제가 비각(秘閣)의 도교 서적을 교정하게 했을 때 참여하여 4,565권을 엮어 올렸고, 그중 중요한 부분 1만 여 조항을 뽑아 운급칠첨(雲級七籤) 122권을 만들었다. <四庫全書提要 卷146>

군방[君房]  한(漢)나라 엄자릉(嚴子陵)이 광무제(光武帝)의 부름을 받아서 서울에 왔는데, 사도(司徒) 후패(侯霸)가 본시 아는 사이라 편지를 보내어 만나기를 청하였다. 엄자릉은 “군방(君房 후패의 자)이 어리석다. 천자(天子)가 나를 세 번이나 불러서 겨우 왔는데, 하물며 신하를 내가 만나러 간단 말인가.”라고 하면서, 편지를 가지고 온 사람에게 “지위가 삼공에 이르렀으니, 부디 인의(仁義)로 군주를 보필하고, 아첨하여 임금의 뜻을 따르지 말라고 전하라.” 하였다.

군방보[群芳譜]  온갖 화초의 계보를 적은 책이다.

군벽[窘逼]  군색함. ‘逼’의 음은 ‘벽’이고, 뜻은 ‘곤궁하고 옹색하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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