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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생불요[群生不夭]~군서고색[群書考索]~군석[君奭]


군상[君相]  임금과 재상.

군상지언장굴지청호[君上言將掘地聽乎]  권력에 비굴하지 않는 꼿꼿함을 뜻하는 고사성어이다. ‘임금의 말은 땅을 파고 들어가 들어야 하는가’라는 권력에 비굴하지 않는 꼿꼿함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재상의 말을 엎드려 들어야 한다면 임금의 말씀은 땅을 파고 들어가 들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서, 고려시대 주열(朱悅)의 말이다. <高麗史 卷106 朱悅傳>

군생불요[群生不夭]  모든 생물(生物)이 요절하지 않음. 군생(群生)은 중생(衆生)과 같고 요(夭)는 비명에 죽는 것을 말하는데 일찍 죽는다는 뜻이 요(殀)와 통용한다. 장자(莊子) 제16편 선성(繕性)에 “음양이기(陰陽二氣)가 본래의 조화를 얻어 고요하며, 귀신도 사람들을 동요시키지 아니하며, 사계절의 운행이 절도에 맞으며, 만물이 손상되지 아니하며, 모든 生物이 요절하지 않았다.[陰陽和靜 鬼神不擾 四時得節 萬物不傷 群生不夭]”고 한 데서 보인다.

군서[軍書]  군사문서이다.

군서고색[群書考索]  일명 산당고색(山堂考索)이라 한다. 남송(南宋) 장여우(章如愚)가 편찬한 유서(類書)로 원본은 100권이나 원명(元明) 시기 증보되었다. 경사백가(經史百家)의 말을 널리 취하여 정치제도를 논하였다.

군석[君奭]  서경(書經) 주서(周書)의 편명이다. 석(奭)은 소공(召公)의 이름이고 군(君)은 존칭이다. 소공(召公)은 주(周)나라 무왕(武王)의 친족으로 소읍(召邑 현재 섬서성陝西省 기산의 서남쪽)에 봉해졌기 때문에 소공(召公) 혹은 소백(召伯)이라고 불렸다. 서서(書序)에 “소공(召公)이 태보(太保)가 되었는데 주공(周公)이 태사(太師)가 되어 성왕(成王)을 좌우(左右)에서 보필하자, 소공(召公)이 기뻐하지 않으므로 주공(周公)이 군석(君奭)을 지어 타일렀다.[召公爲保 周公爲師 相成王爲左右 召公不說 周公作君奭]”라고 하였는데, 서경집전(書經集傳)에 의하면 소식(蘇軾)은 군석(君奭)을 짓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를 “소공(召公)의 뜻은 주공(周公)이 고로(告老)하고 돌아가기를 바란 것이다.”라고 하였다. 서서(書序)는 서경(書經)의 각 편 앞에 붙은 소서(小序)로 각 편이 지어지게 된 동기 등을 간략하게 설명한 글인데, 저자는 미상이다.

군석[君奭]  서경(書經)에 군석(君奭)이 있는데, 군(君)은 높이는 칭호이고, 석(奭)은 소공(召公)의 이름이다. 이 편은 무왕(武王)이 죽고 성왕(成王)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여 주공(周公)이 섭정(攝政)하게 되었을 때, 소공이 늙었음을 고하고 주공에게 물러가게 해 주기를 고하자, 주공이 만류한 것을 기록한 것인데, 그 내용이 아주 간절하다. 주공이 만류하자 소공은 조정을 떠나지 않았으며 성왕을 돕고 또 강왕(康王)을 도와 아름다운 정사를 이루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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