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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실위오[宮室爲洿]~궁실지미[宮室之美]~궁심멱득[窮心覔得]


궁실위오[宮室爲洿]  집을 웅덩이로 만든다는 것은, 전한(前漢) 말기에 역적 왕망(王莽)의 추종자인 장송(張竦)이 유가(劉嘉)를 대신하여 올린 주문(奏文)에서 종실인 안중후(安衆侯) 유숭(劉崇)을 역적으로 무함하여 말하기를 “신은 듣건대, 옛날에는 반역한 나라에 대하여 이미 토벌하고 나서는 그의 궁실을 파서 웅덩이로 만들고 더러운 것들을 쏟아 넣어서 ‘흉허(凶墟)’라 이름하고, 여기서는 채소가 나더라도 사람들이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臣聞古者叛逆之國, 旣以誅討, 則瀦其宮室以爲汙池, 納垢濁焉, 名曰凶墟, 雖生菜茹, 而人不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漢書 卷99 王莽傳>

궁실지미 백관지부[宮室之美 百官之富]  성인(聖人)의 경지를 비유한 말이다. 노(魯)나라 대부(大夫) 숙손무숙(叔孫武叔)이 자공(子貢)을 공자(孔子)보다 낫다고 칭찬하자, 자공이 “궁궐의 담장에 비유해 보건대, 나의 담장은 어깨에 닿을 정도여서 집안의 좋은 것들을 모두 엿볼 수 있지만, 부자의 담장은 그 높이가 몇 길이나 되기 때문에 정식으로 대문을 통해서 들어가지 않으면 종묘의 아름다움과 백관의 풍부함을 볼 수가 없다.[譬之宮牆 賜之牆也及肩 窺見室家之好 夫子之牆數仞 不得其門而入 不見宗廟之美 百官之富]”라고 말한 내용이 논어(論語) 자장(子張)에 나온다.

궁심멱득[窮心覔得]  궁사멱득(窮思覓得). 온갖 힘을 다 들이어 고생한 끝에 겨우 찾아냄.

궁심실욕작양모[窮心悉欲作良謀]  쾌락을 실컷 누림을 좋은 계책으로 삼음. 이세 황제(二世皇帝)가 즉위한 후에 조고(趙高)에게 이목에 좋아하는 바를 다 누리고, 마음에 즐거운 바를 다 이루어 수명대로 살다가 죽는 것이 어떤지 물었다. 이에 조고가 이것은 현명한 임금만이 행할 수 있고, 어리석은 임금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황제를 의심하는 형제들과 대신 및 장군 몽염(蒙恬)의 일파를 제거하고, 법과 형벌을 가혹하게 하면 가능하다고 건의하자, 이세 황제는 그대로 시행하여 17명의 형과 수많은 신하를 죽였다. <史記 卷87 李斯列傳> 이세 황제가 즉위한 지 3년째에 조고는 황제가 신하들에게 약점을 잡혀선 안 된다고 설득하여 이세 황제를 깊은 궁궐에 거처하도록 만들어 신하들과 만나지 않게 만들었다. 이에 조고가 황제의 귀와 입을 막고 권력을 독차지 하니, 이때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을 비롯한 천하의 호걸들이 궐기하여 진나라를 향해 공격하였는데도 이세 황제는 전혀 알지 못하였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황제에게 추궁받을 것을 두려워한 조고는 함양령(咸陽令) 염락(閻樂)을 시켜 망이궁(望夷宮)에서 이세 황제를 시해하도록 하였다. 염락이 이세 황제를 죽이려 하자, 이세 황제는 승상으로 살거나, 군(郡) 하나를 얻어 왕노릇 하거나, 만호후(萬戶侯)가 되거나, 그저 백성이 되어 살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염락에게 빌었으나 거절당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고는 공자 자영(子嬰)을 맞아 황제로 옹립하였다. <史記 卷6 秦始皇本紀> <史略 卷2 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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