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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숙에서의 약속 / 이정록


호텔도 아니고 여관도 아니고

주머니 탈탈 털어 여인숙에 들었을 때,

거기서 내가 솜털 푸른

네 콩 꼬투리를 까먹고 싶어

태초처럼 마음 쿵쿵거릴 때,

슬프게도 나는 농사를 생각했다

묻지도 안 했는데, 어머니와 함께

농사를 짓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잠 좀 자자고 옆방에서 벽을 찰 때에도

나는 농사가 싫다고 말했다

네가 꼬투리를 붉게 여미고 살풋 잠에 들었을 때에도

밭두둑 콩처럼 살기는 싫다고

슬픈 억척이 싫다고 나는 말했다

담장이나 울타리를 타고 오르는 완두콩도 싫고

일 잘하려면 많이 먹어야한다며

며느리 밥그릇에 콩밥을 수북히 푸는

어머니를 떠올리는 것도 몸서리가 쳐진다고 말했다

여인숙 흐린 불빛 아래에서

너와 함께 땅 파는 일은 없을 거라고

나는, 사랑한다는 말 대신에

농사짓진 않겠다고 말했다

화물열차가 지나가는

철로 변 여인숙이었다

<이정록>

— 애지 2002 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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