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 / 신경림
사나운 뿔을 갖고도 한번도 쓴 일이 없다 외양간에서 논밭까지 고삐에 매여서 그는 뚜벅뚜벅 평생을 그곳만을 오고 간다 때로 고개를 들어…
사나운 뿔을 갖고도 한번도 쓴 일이 없다 외양간에서 논밭까지 고삐에 매여서 그는 뚜벅뚜벅 평생을 그곳만을 오고 간다 때로 고개를 들어…
일곱 고개를 넘어야 닿는 어머니 친정집에서 모내기한다는 기별을 보내오곤 했다 모내기철은 꽃게가 살지는 계절 외 할아버지는 갯가로 출가한 맏딸을 기다렸다…
날로 밤으로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손손에 물려줄 은동곳도 산호관자도 갖지…
박을 삼는 집 할아버지와 손자가 올은 지붕 웋에 한울빛이 진초록이다 우물의 물이 쓸 것만 같다 – 마을에서는 삼굿을 하는 날…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 그곳이…
沈香을 만들려는 이들은, 山골 물이 바다를 만나러 흘러내려 가다가 바로 따악 그 바닷물과 만나는 언저리에 굵직 굵직한 참나무 토막들을 잠거…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사랑은 개나리 환한 꽃가지 사이로 왔다가 이 겨울 허전한 팔가슴, 빈 가지 사이로 나를 달래는 빛깔인가, 희부옇게 눈이 내리면서, 그…
용산 역전 늦은 밤거리 내 팔을 끌다 화들짝 손을 놓고 사라진 여인 운동회 때마다 동네 대항 릴레이에서 늘 일등을 하여…
뻔질나게 돌아다니며 외박을 밥 먹듯 하던 젊은 날 어쩌다 집에 가면 씻어도 씻어도 가시지 않는 아배 발고랑내 나는 밥상머리에 앉아…
고종내미 갸가 큰딸 여우살이 시길 때 엇송아지 쇠전에 넘기구 정자옥서 술국에 탁배기꺼정 한잔 걸치고 나올 때는 벌써 하늘이 잔뜩 으등그러졌더랴…
고향을 떠나 아들네 집에 살러 갈 때 평생하던 고생 끝이라며 좋아하던 아버지는 집안의 나무를 뽑아 아들네 정원에 심었다. 무딘 삽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