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등 / 정철훈
만취한 아버지가 자정 넘어 휘적휘적 들어서던 소리 마루바닥에 쿵, 하고 고목 쓰러지던 소리 – 숨을 죽이다 한참만에 나가보았다 거기 세상을…
만취한 아버지가 자정 넘어 휘적휘적 들어서던 소리 마루바닥에 쿵, 하고 고목 쓰러지던 소리 – 숨을 죽이다 한참만에 나가보았다 거기 세상을…
喪家에 다녀온 후 녹초가 되어 문간방에 누워 있었습니다 네 살 먹은 딸 아이 문밖에 서서 우는데 문을 열어주기가 싫었습니다 아이는…
가뭄이 계속 되고 뛰놀던 물고기와 물새가 떠나버리자 강은 가장 낮은 자세로 엎드려 처음으로 자신의 바닥을 보았다 – 한때 넘실대던 홍수의…
땅 위에 살 자격이 있다는 뜻으로 재곤이라는 이름을 가진 앉은뱅이 사내가 있었습니다. 성한 두 손으로 멍석도 절고 광주리도 절었지마는, 그것만으론…
돌각담에 머루송이 깜하니 익고 자갈밭에 아즈까리 알이 쏟아지는 잠풍하니 볕바른 골짜기이다 나는 이 골짝에서 한겨울을 날려고 집을 한채 구하였다 집이…
꼽추가 죽던 날 아무도 울지 않았다 죽은 꼽추를 묻던 날도 휑하니 묻어버리고 산을 내려오던 그날도 누구 하나 울어주지 않았다 그저…
오늘도 그 시간 선원사 지나다 보니 갓 핀 붓꽃처럼 예쁜 여스님 한 분 큰스님한테서 혼났는지 무엇에 몹시 화가 났는지 살풋…
어무니 가을이 왔는디요 뒤란 치자꽃초롱 흔드는 바람 실할텐디요 바다에는 젖새우들 찔룩찔룩 뛰놀기 시작했구먼요 낼 모레면 추석인디요 그물코에 수북한 달빛 환장하게…
여승(女僧)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 평안도(平安道)의 어느 산 깊은 금덤판…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 주면서 속을 비워 간다 –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 바람이 세게…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 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