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 / 최명숙
황단보도 저쪽 그가 서 있었다 노란 은행나무 아래 우산을 들고 신호는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버스가 지나가고 승용차가 지나가고 경적도 없이…
황단보도 저쪽 그가 서 있었다 노란 은행나무 아래 우산을 들고 신호는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버스가 지나가고 승용차가 지나가고 경적도 없이…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 하루 이틀 사흘 – 여름 가고 가을 가고 조개 줍는 해녀의 무리 사라진 겨울 이…
견우직녀도 이날만은 만나게 하는 칠석날 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 안개꽃 몇 송이 함께 묻고 돌아오네 살아 평생 당신께 옷…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빗자루로 쓸어 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아무도 오지 않는 산 속에 바람과 뻐꾸기만 웁니다. 바람과 뻐꾸기 소리로 감자 꽃만 피어납니다. 이곳에 오면 수만 마디의 말들은 모두…
당신이 없다면 별도 흐린 이 밤을 내 어이 홀로 갑니까 눈보라가 지나가다 멈추고 다시 달려드는 이 길을 당신이 없다면 내…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 이윽고 눈 속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 버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