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칸 방 / 허수경
신혼이라 첫날 밤에도 내 줄 방이 없어 어머니는 모른 척 밤마실 가고 – 붉은 살집 아들과 속살 고운 며느리가 살…
신혼이라 첫날 밤에도 내 줄 방이 없어 어머니는 모른 척 밤마실 가고 – 붉은 살집 아들과 속살 고운 며느리가 살…
그 애가 샘에서 물동이에 물을 길어 머리 위에 이고 오는 것을 나는 항용 모시밭 사잇길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는데요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다오 누나 일 가는 광산 길에 피었다오 – 찔레꽃 이파리는 맛도 있지 남 모르게 가만히 먹어 봤다오 –…
첫사랑 그 사람은 입맞춘 다음엔 고개를 못 들었네, 나도 딴 곳을 보고 있었네, – 비단올 머리칼 하늘 속에 살랑살랑 햇미역…
여수발 서울행 밤 열한시 반 비둘기호 말이 좋아 비둘기호 삼등열차 아수라장 같은 통로 바닥에서 고개를 들며 젊은 여인이 내게 물었다…
고요도 씻길대로 씻긴 새벽녘 우리 고향 섬진강이 지리산 마루턱을 향해 기어오르다 겨우 그 허리를 한번 껴안고는 크나큰 숨결로 쏟아져 내리듯이…
나는 아직 그 더벅머리 이름을 모른다 밤이 깊으면 여우처럼 몰래 누나 방으로 숨어들던 산사내 봉창으로 다가와 노루발과 다래를 건네주며 씽긋…
빌딩 숲에서 일하는 한 회사원이 파출소에서 경찰서로 넘겨졌다 점심 먹고 식당 골목을 빠져 나올 때 담벼락에 걸린 시래기를 한 움큼…
물 건너 산 큰고모는 얼금뱅이에 육손이 시집 가 이태 만에 징용으로 남편 잃고 상머슴처럼 남의 품팔아 쐐기밭뙈기나 장만한 뒤 할아버지…
삼동 내- 얼었다 나온 나를 종달새 지리 지리 지리리…… 왜저리 놀려 대누. 어머니 없이 자란 나를 종달새 지리…
신살구를 잘도 먹드니 눈오는 아침 나어린 아내는 첫아들을 낳었다 인가(人家) 멀은 산(山)중에 까치는 배나무에서 즞는다 컴컴한 부엌에서 늙은…
처마 끝에 명태를 말린다 명태는 꽁꽁 얼었다 명태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