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들 / 안도현
생각해 보면, 딱 한 번이었다 내 열 두어 살쯤에 기역자 손전등 들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푸석하고 컴컴해진 초가집 처마 속으로…
생각해 보면, 딱 한 번이었다 내 열 두어 살쯤에 기역자 손전등 들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푸석하고 컴컴해진 초가집 처마 속으로…
호텔도 아니고 여관도 아니고 주머니 탈탈 털어 여인숙에 들었을 때, 거기서 내가 솜털 푸른 네 콩 꼬투리를 까먹고 싶어 태초처럼…
사나운 뿔을 갖고도 한번도 쓴 일이 없다 외양간에서 논밭까지 고삐에 매여서 그는 뚜벅뚜벅 평생을 그곳만을 오고 간다 때로 고개를 들어…
빨간 덩굴장미가 담을 타오르는 그 집에 사는 이는 참 아름다운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 낙엽이 지고 덩굴 속에 쇠창살이 드러나자…
어머니도 없이 들판에서 벼가 익는다 – 통통한 수수목 살찐 참새 들판에 고추잠자리가 떴다 – 오래 전에 난 어머니를 보고 이제…
어제 우리가 함께 사랑하던 자리에 오늘 가을비가 내립니다 –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 함께 서서 바라보던 숲에 잎들이 지고 있습니다…
신발을 벗지 않으면 건널 수 없는 내(川)를 건너야 비로소 만나게 되는 불과 열 집 안팎의 촌락은 봄이면 화사했다. 복숭아꽃이 바람에…
무딘 부엌칼 같은 언니는 서울 자랑을 하지 않았다 무릎걸음으로 둥기적거려도 어느새 나물바구니가 그들먹해지는 언니는 서울에서 공장살이 몇 년에 돈 한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 하리야…
월수 30만원을 받아 쥐고 집으로 가는 저녁 눈이 내린다 우리들 삶의 무게 만큼 덧없고 헐거운 것들이 어깨 위에 쌓인다 포장마차에…
허리를 펴면 덩달아 일어나는 앞산 지팡이 딛는 곳마다 콩을 심었으면 온통 콩밭이 되었을 마을 일하지 않으면 외려 병이 도진다는 그가…
산등성 외따른 데 애기 들국화, – 바람도 없는데 괜히 몸을 뒤뉘인다. – 가을은 다시 올 테지 – 다시 올까? 나와…